文史哲鐵(문사철철)
문학, 역사, 철학은 인문학 필수 분야. 현대제철인의 교양과 자부심을 높이기 위해 철로 풀어본 인문학을 연재한다. 이름하여 文史哲鐵(문사철철)!

‘철의 제국’ 히타이트 멸망 후 히타이트의 대장장이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자신의 기술을 전파했고 이로 인해 동서양 민족은 큰 발전을 이뤘다.

#아시리아, 철로 오리엔트 통일 제국을 이루다
우리가 세계사 시간에 배운 4대 고대 문명 가운데 가장 먼저 문명을 일으킨 곳은 바로 메소포타미아 문명이다. 철은 그 원동력이었다. 기원전 1200년 무렵 철기 제조 기술을 개발하고 발전시킨 히타이트가 멸망한 이후, 그들의 기술은 메소포타미아 일대의 도시국가들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아시리아 역시 이 히타이트 철기 제조술을 전수받아 ‘철의 제국’을 만들 수 있었다. 청동보다 비교할 수 없이 강한 철을 통해 이들은 강력한 무기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를 앞세워 시리아와 팔레스타인을 정복했고 이후 이집트와 지중해 연안, 터키와 중동, 아프리카 일대를 차례로 무너뜨린다. 이들의 전성기는 기원전 7세기 전후. 로마보다 앞서는 최초의 세계 제국이었다.

아시리아는 히타이트의 철기 제조술을 전수받아 ‘철의 제국’을 세웠다.

아시리아인들이 전장에 들고나온 철제 무기는 그야말로 파괴적인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중 최고는 ‘공성탑’이었다. 공성탑은 일종의 이동식 망루로 아시리아인들은 6개의 바퀴가 달린 철로 만든 차체에 5미터 높이의 탑을 설치한 새로운 형태의 전차를 만들었다. 탑 내부에 설치된 거대한 철제 망치가 마치 도끼질하듯 위아래로 움직이면서 적의 성벽을 파괴했다고 한다. 아시리아의 무시무시한 철제 공성탑 앞에 이웃 나라들이 힘들게 쌓아 올린 성벽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강력한 아시리아 제국의 힘 뒤에는 바로 철이 있었다.

#인도, ‘델리의 철기둥’을 세우다
역시 세계 4대 문명 중 하나인 인더스 문명을 꽃피운 인도. 기원전 3000년경 시작돼 기원전 1500년경 서쪽에서 침입해 온 아리아인에 의해 멸망하기까지 인도인들은 과학적인 배수 시설과 경이로운 건축물 등 지금 봐도 놀라운 문명을 이룩했다. 인도에서 도시와 국가가 확장되는 계기를 마련해 준 건 역시 철기의 도입이었다. 인도의 철기시대는 대략 기원전 1200년경에서 서기 300년 무렵. 철기가 도입되면서 인도인들은 밀림을 개간해 농지를 넓혀 나갔고 기원전 1000년 즈음엔 철제 농기구로 일군 농지에 아프리카산 작물도 재배하는 등 철기를 이용해 풍요로운 삶을 가꿔나갔다.

인도 철기 제조기술 수준을 말없이 보여주는 유적이 있다. 바로 ‘델리의 철기둥’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쿠트브 미나르 유적지에 서 있는 이 기둥은 ‘녹슬지 않는 철기둥’으로 유명하다. 직경 44센티미터, 높이 약 7미터, 무게는 거의 10톤에 달하는 이 거대한 철 기둥은 5세기 초 찬드라굽타 2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고 한다. 신기한 점은 지금까지 16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숱하게 비바람을 맞으면서도 전혀 녹슬지 않았다는 것. 학자들은 그 이유에 대해 아직도 여러 가지 가설을 내놓을 뿐 누구도 정확한 이유를 밝히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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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0여 년이 넘는 세월을 버티면서도 녹이 슬지 않은 델리의 철기둥.

델리의 철기둥은 99.72%의 고순도 철로 만들어졌지만 아무리 순도가 높아도 보통 50년 정도면 녹이 슨다고 하니 높은 순도는 이유가 되지 못한다. 인도에서 나는 철광석에는 인(P) 성분이 많아 이로 인한 인산 화합물이 표면에 코팅돼 녹이 슬지 않는다는 가설도 있다. 몸에 기름을 자주 바르는 인도인들이 철기둥의 신비한 힘을 받으려고 몸을 대거나 올라탈 때 묻은 기름이 녹을 막았다는 ‘믿거나 말거나’ 수준의 주장도 있다.

이렇게 다양한 가설이 난무하는 가운데 델리의 철기둥은 인도의 철기 문명과 그 신비한 기술 수준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문화유산으로 굳건히 서 있다.

#한나라, 철로 번영을 이룩하다
진시황의 진나라는 불과 15년 천하로 끝나고 말았다. 진나라를 이어 통일 중국의 패권을 차지한 건 한나라였다. 서양에 로마가 있었다면 동양에 한나라가 있다고 할 만큼 한나라는 로마와 같은 시기에 엄청난 대제국을 이룩했다. 강력한 철의 문명을 이룩한 로마도 뛰어넘을 만큼 한나라는 엄청난 철 생산 강국이었다.

한나라를 철의 강국으로 만든 것은 바로 ‘수력 풀무’의 개발이었다. ‘풀무’란 대장간에서 쇠를 달구거나 또는 녹이기 위해 화덕에 뜨거운 공기를 불어넣는 기구. 중국인들은 일찍이 전국시대에 풀무를 개발했으니 이는 유용한 전쟁 무기이기도 했다. 전국시대의 사상가 묵자의 기록을 보면 ‘성안으로 들어오는 적들을 막을 때 우선 굴을 판 다음 나무 벽을 세우고 질그릇 가마를 설치해 지레로 풀무질을 해서 각종 독가스를 뿜어냈다’고 되어 있다.

한나라 시대 들어 풀무는 수력으로 용광로에 더 센 바람을 더 안정적으로 공급했다.

풀무를 활용해 전보다 용광로의 온도를 크게 높일 수 있었던 중국인들은 한나라 말기에 획기적인 기술을 발견했다. 바로 ‘수력 풀무’였다. 기존의 풀무는 많은 인력과 시간이 필요했지만 수력 풀무는 물살이 센 물가에 커다란 나무 바퀴를 세워 놓기만 하면 그 힘으로 용광로에 강력한 바람을 불어넣을 수 있었으니 인력도 줄이면서 전보다 센 바람을 더 일정하게 용광로에 투입할 수 있었다. 물이 마르지 않는 한 바람을 계속 일으킬 수 있었으니 수력 풀무는 철을 만들어주는 마르지 않는 샘과 같았다.

한나라는 소금과 함께 철에 대해 국가가 판매를 독점하는 전매 제도를 실시했다. 이는 사람에게 없어서는 안 될 소금처럼 철이 한나라에서 얼마나 귀한 대접을 받았는지를 잘 말해준다. 드넓은 중국 대륙을 다스릴 수 있었던 한나라의 힘은 철을 다루는 기술에서 나왔다.

「쇠부리토크」 편집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