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무렵 무심코 바라본 가을 하늘, 붉게 물든 노을을 보면서 눈물 나게 아름답다고 느낀 적이 있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이미 예술가다. 윤광준 작가는 ‘나만의 느낌’에서 예술이 시작된다고 말한다. 미지의 아름다움에 대한 호기심으로 여전히 가슴이 설렌다는 그를 예술적 향취로 가득한 작업실에서 만났다.
윤광준 작가는 일상을 아름답고 풍요롭게 즐기는 일상예술가이자 생활명품가다. 예술은 멀리 미술관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무엇이든 호기심을 갖고 열린 감성으로 대하면 일상은 예술이 된다. 그에게 예술은 친근한 삶의 태도다. 자신을 둘러싼 온갖 것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글과 사진으로 창작하며 우리 안의 심미안을 깨운다. 삶이 왠지 메마르게 느껴진다면 윤광준 작가의 말에 귀를 기울여보라. 일상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예술을 즐기는 것이 어떻게 삶을 생기롭게 바꾸는지 깨닫게 해준다.
전 세계를 누비며 예술에 대한 지식과 안목을 쌓고, 그것을 글을 통해 전달하는 ‘아트 워커(Art Worker)’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셨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고 계신가요?
말 그대로 아트 워커는 예술 전반을 아우르는 일종의 노동자입니다. 지금까지 각 예술 장르는 독립적으로 활동해왔는데, 그것들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죠. 각 분야의 예술적 성과들을 통섭적으로 보고 새롭게 재창조하기도 합니다.
미술, 음악, 건축, 디자인, 국악 등 예술 전반에 대한 안목이 대단하신데요. 사진작가로 활동하시다가 다양한 예술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저는 잡지사 사진기자로 출발했습니다. 기자는 이 세상 온갖 것에 관심을 가지고 다가서는 사람입니다. 한국이라는 나라 전체의 삶과 우리 일상을 돌아보는 일들이 제 직업이었던 것이죠. 그때 이미 지금 제가 관심을 갖고 있는 예술과 예술가들을 직접 보게 됐고, 그때의 영향이 지금까지 이어져왔습니다. 제 관심이 그 현장으로부터 멀어지지 않았기에 아트 워커가 될 수 있었죠.
예술이 우리 삶을 어떻게 풍요롭게 하나요?
이 질문에 저는 아주 간단하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예술은 한 번도 낡은 반복을 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새롭게 펼쳐진다는 것이 예술의 가장 큰 매력이죠. 예술을 알고 모르고는 우리 삶의 모든 일상에 대한 세밀한 기대가 있는가 없는가에 대한 태도의 문제라 생각합니다. 아름다운 것을 섬세하게 감각하는 취향이 단단해질수록 삶은 구체적이 됩니다. 그것이야말로 행복의 디테일을 채우는 방법이죠. 새로운 미래에 대한 호기심과 작은 액션 등이 예술을 일상으로 만드는 힘입니다.
그런데 예술이라고 하면 특별한 것, 특별한 사람들만 누리는 것이라는 생각이 여전히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뭘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예술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체험하지 못하니 관심이 생기지 않고, 관심이 없으니 예술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겁니다. 예술을 즐기고 싶으면 현재의 소소한 일상에 주목해보고 나와 다른 것에 대한 호기심 어린 자세가 가장 중요합니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감각을 지닌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죠.
좋은 것을 볼 줄 아는 안목, 즉 ‘심미안’을 강조하셨습니다. 일상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왜 예술적 관심이 적을까요? 개인적으로 교육이 잘못됐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예술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설명하는 것부터가 잘못이죠. 예술조차 시험을 보기 위해 공부합니다. 그러니 예술을 상식의 범위에서 이해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겁니다. 심미안을 갖추는 건 지식의 범위가 아니라 ‘내가 느끼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내가 스스로 느끼고 판별하는 것이 미의 기준이 되고 예술을 이해하는 힘이 됩니다.
예술을 즐기는 삶과 그렇지 않은 삶은 어떻게 다른가요?
천양지차죠. 음악이 흐르고, 꽃이 있으면 공간이 달라지죠! 왜 우리의 삶이 팍팍하고 힘들까요? 일상이라는 것에 갇혀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내가 기대하지 않았던 엄청난 뭔가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 것이 훨씬 더 아름다운 삶이 될 것입니다. 예술은 미지에 대한 상상으로 일상에 기대감과 생기를 불어넣습니다.
직접 예술을 창작하는 사진작가이시기도 한데, 사진은 어떤 매력을 갖고 있나요?
사진의 놀라운 매력 중 하나가 못 보던 것을 보게 한다는 점입니다. 사진은 평소에 관심이 없었던 것에 관심을 갖게 하고,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나름의 의미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역할을 합니다. 맨눈으로 보면 감흥이 없는 것들이 카메라를 대는 순간 새롭게 보이는 경험을 하게 되죠. 새로움을 추구하고 확인하는 것이 예술의 속성이라면, 그것을 가장 첨예하게 느끼게 하는 방법이 바로 사진입니다.
작가님이 집필하신 「잘 찍은 사진 한 장」은 사진의 바이블로 불립니다. 잘 찍은 사진 한 장을 위해 가장 중요한 자세는 무엇인가요?
카메라에는 답이 없다는 것이 제 결론입니다. 새로운 것을 보고 느끼는 것이 먼저입니다. 거기에 카메라만 얹으면 사진이 되는 것이죠. 그래서 사진을 잘 찍으려면 세상을 보는 눈을 먼저 키워야 합니다. 창의적인 작가의 사진은 다른 사진과 시선이 다릅니다. 그것은 그 작가의 보는 눈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무조건 다른 시선으로 다르게 찍어야 합니다. 그 다름은 나만의 시선에서 나옵니다. 많이 보고 많이 느껴야 합니다. 아름다움은 체험한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알게 됩니다. 안목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길러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른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몇 해 전 한쪽 눈을 실명하실 뻔했다고 들었습니다. 예술가로서 시력을 잃는 것은 치명적일 텐데요. 그 시기를 어떻게 견뎌내셨나요?
3년 전 망막박리 진단을 받았습니다. 해외에 있을 때여서 응급조치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게 화근이었죠. 국내에 들어와 수술을 받아야 했는데, 절망적인 상태였어요. 두 번의 수술 끝에 다행히 실명은 면했지만 치료를 하는 6개월은 정말 고통스러웠습니다. 고통을 이겨내는 데 예술이 큰 힘이 되었죠. 세상에 내로라하는 아름다운 것들은 다 보고 다녔으니까요. 아름다움의 정점에 있는 예술을 보고, 듣고, 느낀 게 절망의 순간에 큰 위안이 되었고 선명히 그려졌죠. 지금도 한쪽 눈은 복시로 보여 조잡한 입체 영화를 보는 것처럼 매우 혼란스럽습니다. 하지만 실명을 하지 않은 것에 비하면 축복을 누리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투병 후 예술과 삶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졌을 듯합니다.
굉장히 큰 폭으로 달라졌죠. 제 삶이 무한하지 않다는 걸 절감하게 됐어요. 지금까지 난 잘 살아왔는지, 내가 한 선택들이 올바른 것이었는지 점검해보게 됐습니다. 가장 크게 변한 건 미루지 않게 됐다는 거예요. 언제 죽을지 모르고, 언제 장애가 생길지 모르는데 앞으로 벌어질 일을 미룰 수는 없죠. 그래서 약속을 할 때도 무조건 가장 빠른 날짜로 당기고, 일도 가능한 한 빨리 해치웁니다.(웃음) 이것은 상징적인 변화로, 제 삶의 도처에 적용됩니다.
최근 새롭게 관심을 갖고 계신 분야가 있나요?
우리나라 정원의 아름다움에 매료돼 있습니다. 전국에 있는 정원 시설을 찾아가서 직접 보기 위해 동선까지 그려두었죠. 또한 현재를 규정하는 중요한 키워드인 과학에도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세상을 이끌고 있는 과학의 근원적인 힘을 예술과 이어보고 싶습니다. 제 호기심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새로운 것에 대한 기대가 줄어들지 않았다는 뜻이죠.
글 「쇠부리토크」 편집팀
사진 김성헌(STUDIO INDIE 203)
영상 정유라(wavefilm)
※ 코로나19 방역수칙을 안전하게 지키며 취재 및 촬영을 진행했습니다.
예술의길을 험난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