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꽃중년의 인생 참맛 도전기!
중국요리 연구가 신계숙 교수

기름 먹은 무쇠웍에 볶아낸 고기와 야채의 고소한 냄새가 후암동 골목 어귀에 퍼진다. “밥 먹고 가셔유!” 수더분한 인상의 중년 여성이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로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웍질 경력 35년, 청춘을 오롯이 주방에서 보낸 신계숙 교수. 현재는 배화여자대학교 전통조리과에 재직 중이다. 그가 한상 차려낸 오늘의 요리는 중국식 소허파 볶음. 음식과 술, 정담이 오가는 요리연구소 계향각에서 유쾌한 꽃중년, 신계숙 교수를 만났다.

수요일의 신계숙은 부츠를 신은 채 할리 데이비슨을 몰고, 목요일의 신계숙은 조리복을 입고 동파육을 삶는다. 금요일의 신계숙은 정장 차림으로 학생들 앞에 서고 토요일의 신계숙은 흥에 취해 색소폰을 불고 노래를 열창한다. 신계숙은 매일 새로운 사람이 된다. 그의 본령은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음식을 연구하는 일. 천직이라 여기지만 이왕 하는 일, 좀 더 재밌게, 오래 하고 싶다. 그래서 궁둥이를 들고 간다. 그리고 즐겁게 기꺼이 한다!

최근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EBS <신계숙의 맛터사이클 다이어리> 출연으로 대중에 널리 알려졌습니다. 유명세만큼 바쁜 나날을 보낼 텐데 일상의 균형은 어떻게 유지하나요?

취미도 다양하고 여러 가지 일을 하지만, 제 근간은 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이자 요리사이기 때문에 기본 일상은 학교와 요리로 세팅되어 있어요. 만약 코로나로 인한 비대면 수업이 아니었으면 지금처럼 방송하긴 어려웠을 거예요. 스케줄 조절은 일상이란 큰 틀에 벽돌을 채운다고 생각하고 가장 큰 벽돌부터 채워나가요. 현재 큰 벽돌은 <신계숙의 맛터사이클 다이어리> 녹화인데 여행을 못 가는 시기여서인지 많이들 봐주셔서 다행이에요.

방송에 출연해도 이렇게 큰 인기를 누리기는 쉽지 않은데요, 비결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꾸미지 않는 매력?(웃음) 길거리에서 저를 알아보는 분들의 공통점은 제 이름을 불러요. “어이 계숙이!” 하기도 하고, 딸처럼 “계숙이네, 계숙이” 라고도 하시고요. 제가 게을러서 꾸미는 걸 못해요. 최선을 다해 세수하고 스킨로션만 발라요. 그렇다 보니 옆집 언니 느낌으로 친근하게 봐주시는 것 같아요. 텔레비전에서 본 사람인데 어쩐지 만만한 느낌이 드는 거죠. 저는 아무래도 좋아요.

불편하거나 기분이 상하진 않나요?

‘보진시박(寶眞示朴)’이라는 중국의 성어가 있어요. 진정한 진주는 돌처럼 보인다는 뜻이거든요. 스스로 나는 진주인데 돌처럼 보인다고 생각하는 거죠. 처음 보는 분이 제 이름을 막 부르셔도 그분이 저와의 만남을 기쁘게 여긴다면, 그걸로 제가 덕을 베풀었다고 생각해요.

일과 취미로 다양한 착장을 하잖아요. 교수님에게는 어떤 옷이 가장 편한가요?

바이크복이요. 청바지에 자켓 하나 걸치면 그냥 오토바이 타고 나가는 거 잖아유.(웃음) 바이크복을 입으면 마음이 편하고 늘 달리는 느낌이에요. 조리복을 입으면 양파라도 까야 직성이 풀리고, 정장을 입으면 즉시 선생 모드가 되어야 하니 편하진 않죠. 실은 선생 일이 가장 어려워요. 22년째 하는 일이지만요.

교수가 되기 전 20~30대에는 중식당 ‘향원’에서 요리사로 일하고 전국의 여러 문화센터에서 요리 강좌를 하셨어요. 중식 요리사 일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은데요.

요리를 일이라고 여기지 않고 재밌는 놀이라고 생각했어요. 노느라 피곤하다고 생각했지 일이 고되니까 때려치워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화교 출신 남성 요리사만 가득했던 주방에서 텃세도 있었고, 불앞에서 웍질을 하다 보면 숨이 막혀서 심호흡 할 때도 많았는데 그래도 좋았어요. 물론 힘들 때도 있었죠. 그러나 ‘나의 성공은 나의 눈물을 먹고 자랄 것이다’라는 확신이 있었어요. 당시 제 투정을 들어주시던 은사님도 힘이 되어주셨고요.

교수님을 요리의 길로 이끌어주신 은사님들이 계시죠. 전공이 중어중문학인데 어쩌다 요리사의 길로 접어들었나요.

대학 은사님인 성의제 교수님이 아르바이트 자리를 소개해주시며 제자 중 요리하는 놈이 하나 나왔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아르바이트 자리가 바로 중화요리의 대가인 이향방 선생님의 식당 ‘향원’이었어요. 그렇게 8년간 ‘향원’에서 일하며 이향방 선생한테 요리를 배웠어요. 요리사를 생각해본 적은 없었지만, 교수님이 추천하셨을 때 추호의 의심도, ‘왜’라는 반문도 하지 않았어요. 교수님의 오랜 경험과 저에 대한 애정을 믿었거든요.

요리가 적성에 맞았군요.

요리를 해서 사람들에게 내어줄 때 너무 기뻐요. 기쁘니까 자꾸 기쁘고 싶어요. 저는 늘 밥할 준비가 되어있어요. 삶의 원칙이 ‘음식연구소에 들른 누구든 밥때가 되면 밥을 먹이고 보내자’에요. 제 밥을 드신 분들은 “계숙이 좋다” 하지, “걔 나쁜 애야” 하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제 눈앞에 있는 분에게 최선을 다해요. 그 사람이 ‘내가 계숙이한테 존중받는구나’ 느낄 수 있게요. 밥 한 끼의 힘은 초강력 본드죠.

요리를 직접 하는 일과 요리를 가르치는 일은 많이 다를 것 같은데요.

가르치는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거리두기가 되지 않았어요. 학생에게 과도한 관심을 기울이고 답을 주려다 보니 서로 부담스러웠죠. 그러다 한 발짝 물러서서 질문을 먼저 하는 여유가 생겼어요. 훨씬 자유로워졌죠. 학생들도 더 잘 따라왔고요. 요리도 마찬가지예요. 처음 요리를 할 때는 원재료에 뭐라도 더 추가하고 싶었지만, 경험이 쌓이면서 어떻게 하면 양념을 덜 넣고 원재료의 맛을 즐길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한 발짝 떨어져 보는 여유 덕에 오토바이도 타고 색소폰도 부는 취미도 즐기게 된 걸까요?

제게 취미란 매일을 더욱 생생하게 살아가도록 만들어주는 고마운 존재예요. 취미 덕분에 방송도 하고 과분한 사랑도 받게 되었네요. 타던 것도 관둬야 할 나이라는 쉰일곱에 갱년기 열감을 좀 내려 보겠다고 제2종 소형면허를 따고 ‘할리데이비슨 48’을 샀어요. 하늘에서 낙하산을 타고 내려오는 것 같은 기분을 만끽했죠. 색소폰은 만두를 지지는 3분 동안 연주하면 딱이다 싶어서 도전했고요. 아마추어 색소폰 연주 모임에 가입해 합주도 한답니다.

사실 쉬운 도전은 아닌데요. 교수님에게 어떤 동력이 있었나요?

아버지가 일흔 살에 돌아가셨는데요, 제가 아버지 연세만큼 산다면 남은 시간은 11년 밖에 없어요. 1분 1초가 소중하죠. 한 번뿐인 생, 10년이 주어진다면 굉장히 치밀해야 해요. 누구나 자기 가슴에 하고 싶은 것을 품고 있잖아요. 그런데 실행하지 않으면 꿈은 그저 꿈으로 스러질 뿐이에요. 제게는 오토바이가 꿈이었어요. 남들 눈에는 즉흥적으로 도전한 것처럼 보였을 수도 있지만, 준비 기간이 굉장히 길었어요. 적금을 들고 운동을 하면서 차근차근 계획했지요. 신계숙의 도전 3법칙이 ‘첫째, 궁둥이를 든다! 둘째, 간다! 셋째, 한다!’인데요. 그 전제가 ‘준비는 착실히 하되 궁둥이는 빨리 든다’예요.

교수님의 인생 요리가 있을 거 같아요.

동파육을 꼽고 싶네요. 동파육은 돼지고기 삼겹살을 두툼하게 썰어서 간장 양념에 조린 중국요리에요. 조리 시간만 8시간 이상 걸리는데 이 요리야말로 요리사 손에 붙으면 붙을수록 신기할 정도로 맛이 좋아져요. 털과 발톱 빼고 모든 부위를 사람에게 희생하는 돼지라는 소중한 식재료로 기다림과 정성을 들여 만드는 요리죠. 동파육 하나로 인내, 배려, 이해, 사랑을 다 설명할 수 있어요. 제 인생도 동파육처럼 무르익길 바랍니다.

「쇠부리토크」 편집팀
사진 김성헌(STUDIO INDIE 203)
영상 더기스튜디오(Duk2studio)

※ 코로나19 방역수칙을 안전하게 지키며 취재 및 촬영을 진행했습니다. 

  • tae*** 댓글:

    재료의 정직함이 맛있는 요리를 만들수있죠
    앞으로도 좋은음식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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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sk*** 댓글:

    짝짝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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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o2*** 댓글:

    요리전문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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