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쎈캐’ 배우의 스윗한 반전 매력
배우 강성진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의 신스틸러, 긴 파마머리를 풀어 헤치고 어설프게 록을 동경하는 ‘딴따라’, 배우 강성진의 강렬한 첫인상이다. 1991년 <열아홉의 절망 끝에 부르는 하나의 사랑 노래>로 데뷔한 그는 영화 <달마야 놀자>, <실미도> 등에서 센 캐릭터를 찰떡같이 소화해낸 카리스마 넘치는 악역 전문 배우다. ‘쎈캐’ 가면을 벗고 무대에서 내려오면 그는 오히려 소심하게 보일 만큼(?) 성실한 한 남자다. 캐릭터 뒤에 인간 강성진의 스위트한 눈빛이 숨어 있다. 어쩌면 그는 ‘쎈캐’가 아니라 ‘사기캐’인지도 모르겠다.

#1 무대 위 조명이 켜지면

배우가 된 지 오랜 시간이 흘렀다. 우연한 기회에 시작한 배우라는 직업으로 20대 초반 큰 성공을 경험했던 배우 강성진. 하지만 모든 인생이 그러하듯 그의 필모그래피에도 등락은 있었다. 하지만 그런들 어떠하랴. 그는 여전히 배우라는 직업을 사랑하고, 더 좋은 배우가 되기 위해 오늘도 성실히 하루를 살아간다.

악역 전문 배우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붙는데요, 솔직히 기분이 어떠세요?

영화나 드라마도 그렇지만 뮤지컬 무대에서도 너무 나쁜 악역을 많이 해서 공연이 끝나고 나서 박수를 못 받는 편입니다. 무대가 끝나고 커튼콜을 할 때 제 차례만 되면 박수 소리가 작아지거든요. 그래서 일부러 짓궂게 박수를 유도하기도 하지만 역할은 역할, 강성진은 강성진이죠. 악역을 해서 저를 싫어한다? 그건 그만큼 제가 연기를 잘했다는 뜻이 되니까 감사할 따름입니다. 배우가 예술가로 인정받을 수 있는 건 캐릭터의 창작자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센 캐릭터, 카리스마 있는 역할들을 좀 잘 소화하는 편인데 악역을 잘하는 사람들이 실제 생활에서는 굉장히 선하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웃음). 그게 바로 연기의 재미이자 의미인 것 같습니다.

악역은 물론 코믹한 배역도 기억에 남아요. 이렇게 다양한 연기를 하게 해준 원동력이 있을까요?

정답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수능 만점 받은 학생에게 비결을 물어보면 ‘교과서 위주로 공부했어요’라고 하지요? 식상한 것 같지만 그게 정답이에요. 배우들은 쉬지 않고 훈련을 합니다. 어떤 작품, 어떤 캐릭터를 맡든 대본을 보다 보면 관객들이 만족할 만한 캐릭터를 만들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저는 늘 대본을 손에 쥐고 다녀요. 밥 먹을 때도 손에 쥐고 있고 잠을 잘 때도 머리맡에 두고 잡니다. 틈만 나면 보고 또 보고 문신처럼 가지고 다니다가 그 역이 끝나면 탁 놔요. 대본을 버려요. 내 일상을 잘 살아야 배역도 잘 살릴 수 있거든요.

연기를 시작하기 전, 프로필이 흥미로운 것 같아요.

원래 배우가 되고 싶었던 건 아니었어요. 고등학교 때 꿈은 특파원 기자가 되는 것이었죠. 그러다가 재수를 하면서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그렇게 연극영화과에 진학했습니다. 하지만 인생이란 늘 계획대로 되는 게 아니잖아요. 우연히 배우 오디션을 보게 됐고, 신인 때 인지도가 생기면서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아닌 배우로 살게 되었습니다.

연기한 여러 배역 중 최고의 캐릭터를 꼽아보신다면? 앞으로 꼭 한번 해보고 싶은 욕심나는 캐릭터도 궁금합니다.

절 보시면 “아! 강성진 씨 실물이 훨씬 멋있어요!”라는 말을 많이들 하시거든요. 화면보다 실물이 낫다는 말을 1만 5700번 정도 들었더니 아무래도 실물로 만나는 공연에 마음이 많이 가더라고요(웃음). 그래서 뮤지컬 <잭 더 리퍼> ‘먼로’를 빼놓을 수 없겠네요. 제가 뮤지컬 배우로 활발히 활동할 수 있게 관객들에게 강성진을 인식시켜준 역이거든요. 그래도 최고의 인생 캐릭터로는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의 ‘딴따라’를 꼽고 싶어요. 감독을 꿈꾸던 나를 배우로 살게 해준 캐릭터라서요. 욕심나는 캐릭터는, 음… 좋은 아버지를 연기하고 싶어요. 4월에 예정된 대학로 공연이 있는데, 그 공연에서 아버지 역할을 하게 되었어요. 꿈꾸던 캐릭터를 해볼 기회가 곧 올 것 같습니다.

#2 연극이 끝나고 난 뒤

스포트라이트가 꺼지고 무대 밖 관객석에 앉았다. 인간 강성진으로 돌아가는 시간. 한창 자라는 아이들을 위해 2년여를 고민해 양평에 집을 지었다는 그. 인생의 그래프가 하향 곡선을 향해 가던 시기에도 새로 태어난 아이들 덕분에 다시 한 번 더 힘을 낼 수 있었다는 그는 다정한 가족주의자다.

삼남매의 아버지이자 좋은 아빠로 유명하시더라고요.

큰아들이 2007년 3월 15일 태어나자마자 다음 날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이 아버지를 잃어버리는 순간이었죠. 그날 이후 저는 인생의 목표가 바뀌었어요. 핸드폰 카카오톡 프로필에 새기고 다니는 말이 ‘제 꿈은 좋은 아빠입니다’예요. 세상에 나쁜 아빠가 어디 있겠습니까만 정말 최선을 다해서 가족과 함께하고 싶어요. 죽기 전에 아이들에게 정말 좋은 아빠였다는 말을 듣고 생을 마감한다면 여한이 없을 것 같습니다.

인터뷰 내용 중 자신을 가족주의자라고 말한 부분이 기억에 남아요.

네. 좋은 배우가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는 앞에서 말한 것처럼 좋은 아빠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결혼이란 가족이 함께하는 행복한 천국이라는 표현을 한 적이 있어요. 언젠가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 제가 잔소리꾼 남편처럼 비친 적이 있는데, 그건 삶의 한 부분만 강조하다 보니 그렇게 보인 것이고 현실 속 강성진은 가족과 함께할 때가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배우 강성진과 인간 강성진을 정의해주세요.

저는 배우입니다. 화면이나 브라운관을 통해서 보여주는 모습은 연기지요.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출연하더라도 대본이 존재하고 연출이 존재하거든요. TV 방송과 공연 무대에서 100% 리얼이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어디에 출연해서 무엇을 하더라도 배우 강성진은 캐릭터의 존재 이유를 찾고 있습니다. 가족은 가장 작은 단위의 천국이라고 생각하는 인간으로서 강성진은 가족을 빼놓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네요. 정말 가족들의 행복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가족이 생기는 순간부터 ‘나’에서 ‘우리’로의 이동이 참 순조로웠어요, 저는.

코로나 시국으로 문화계도 움츠러들고 있는데요, 의미 있는 변화가 있었을까요? 앞으로 어떤 활동을 계획하고 계신지도 궁금합니다.

요즘 하던 공연이 갑작스레 많이 중단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공연장과 영화관은 방역지침도 잘 따르고 가장 안전한 곳인데 안타까워요. 그래서 비대면 공연도 시도하고 있습니다. 인터넷 ‘네이버 나우’로 <커튼콜>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매주 월요일에는 뮤지컬 라이브쇼, 화요일에는 연극쇼로 대중들에게 문화 예술을 소개하는 뜻깊은 공연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강성진 액션 골프’라는 유튜브 채널도 운영하고 있죠. 다양한 분야에서 아마추어로 즐겁게 놀 수 있는 방법을 찾으면서 배우로서 다양한 필모그래피를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쇠부리토크」 편집팀
사진 김성헌 사진가
영상 정성한(WITHENM)
※ 코로나19 방역수칙을 지키며 안전하게 취재 및 촬영을 진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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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
  1. 많은활동 바랍니다

  2. 주유소 습격사건 너무 재밌게 봤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