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백 갖고 싶니? 그럼 뛰어!

백화점 명품관 앞에 새벽부터 긴 줄이 늘어섰다. 처음엔 진풍경이었다. 하지만 줄은 점점 더 길어졌고 1년 넘게 계속되면서 사회현상으로 떠올랐다. 사람들은 왜 명품을 향해 질주할까?

클스사러 신강에서 오픈런하는 MZ세대

신종 달리기가 유행이다. 일명 명품 오픈런(Open Run). 백화점 명품관 개장 전부터 줄을 서 문을 여는 순간 안으로 달려 들어간다. 특히 ‘에루샤’(에르메스, 루이비통, 샤넬) 명품의 주 고객은 20~30대 젊은이들(MZ세대)이다. 경쟁이 치열하고 과시욕이 강한 우리나라에서 명품 소비는 꾸준히 늘어왔다. 여기에 젊은 층까지 가세하면서 이상 과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돈을 싸 들고 가도 없어서 못 사 ‘팔자 런’이라고도 불린다. 오픈런이 인산인해를 이루면서 줄서기 아바타까지 등장했다. 오픈런 관련 신조어와 줄임말도 생겨났다. 샤넬을 판매하는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을 ‘신강’, 신세계백화점 본점을 ‘신본’, 압구정 갤러리아 백화점은 ‘압갤’이라 말한다. 샤넬 제품의 이름도 줄여서 부른다. 샤넬 가방 중 가장 인기가 많은 클래식 스몰 플립백은 ‘클스’, 클래식 미디움 플랩백은 ‘클미’라고 부르는 식이다.

줄서기 알바 체험 유튜버(왼쪽)와 오픈런 체험하는 개그맨들(오른쪽)

여행도 못 가고 집도 못 사니까, 명품 ‘플렉스’

사람들은 왜 명품을 갈망할까? 예전엔 명품 가격이 오르기 직전, 조금이라도 싸게 사려고 몰렸다. 이른바 명품 재테크였다. 비싸도 유행 덜 타는 고가 명품 구매는 사치가 아니고 오히려 합리적 소비였다. 그러나 코로나 시대로 해외여행이 힘들어진 데다 설상가상으로 집값 폭등 탓에 집 장만도 어려워진 지금, 일종의 ‘보상심리’로 명품을 산다. 아파트 오픈런을 하고 싶어도 안 되는 현실. 그 현실에서 느끼는 좌절감과 무기력을 명품으로 보상받고 싶은 것이다. 여기에 남들이 가진 명품을 내가 못 가지면 루저처럼 느껴지는 ‘경쟁심리’도 가세한다. 코로나 블루를 위로받으려는 이 같은 소비행태는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2021년 6월 대한상공회의소의 ‘코로나 시대 소비행태’ 분석 보고서는 보상소비(Act of reward)를 코로나 이후 소비 트렌드 키워드로 제시했다. 62.6%의 소비자가 ‘나만의 행복과 자기만족을 위해서 조금 비싸더라도 기꺼이 지불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왜 명품으로 보상받고 싶은 걸까

이런 보상소비의 깊은 뿌리는 상품물신성에 있다. 상품물신성은 친밀한 인간관계 대신 상품과 돈을 신처럼 숭배하는 현상이다. 자본주의 상품사회가 만들어낸 기저 심리다. 상품사회는 공동체보다 개인을, 인간관계보다 비싼 물건을 좋아한다. 돈벌이를 무한 추구하는 자본은 제품 차별화나 가격 차별화 등으로 경쟁심리를 부채질하고, 보상심리를 교묘히 이용해 매출을 올린다. ‘에루샤’ 3사의 2020년 매출액은 총 2조 4000억 원인데, 전년 대비 30% 넘게 늘었다.

보상소비를 자극하는 또 다른 면은 사회경제 양극화다. 빈익빈 부익부로 벼락거지가 됐다는 허탈감 때문에 일단 명품백을 지르고 본다. 무엇보다 피부로 느끼는 양극화는 일자리다. 국회예산정책처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에 중간 숙련 일자리(사무직, 장치·기계조작 등)가 대폭 감소해 전년 대비 16만 2000명이나 줄었다. 코로나19 사태가 인간 노동력을 자동화 기술력으로 더욱 빠르게 바꾸면서 제조업 일자리가 가파르게 감소한 것이다. 반면, 기계 대체가 어려운 전문직 등 고숙련이나 단순 노무 등 저숙련 일자리는 증가했다. 일자리 양극화 현상이다. 이는 소득 양극화로도 이어져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진다. 거시경제도 마찬가지다. 국내 주요 대기업들은 2021년 2분기에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그러나 대다수 중소·영세기업은 더 궁지로 내몰렸다.

결론은 ‘묻지 마 공시생’ 

양극화는 청년들에게도 희망적이지 않다. 일부 전문직종을 제외하면, 중간 숙련직종은 감소하고 저임금 저숙련 일자리만 늘어나 청년들 기회가 대폭 줄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오늘날 청년들은 입학 직후부터 취업에 올인한다. ‘묻지 마, 공시생’ 분위기 탓에 지성인다운 사회의식은 희미해진다. 더 심각한 것은 따로 있다. 그렇게 애써 취업에 성공한들, 본인의 관심사나 잠재력에 기초한 자발적 판단이 아니기에 직무 불만족이나 좌절감에 노출되기 쉽다는 점이다. 원래 사람은 돈이나 지위와 같은 외재적 동기보다 보람이나 가치와 같은 내재적 동기에 의해 움직일 때, 더 즐겁게 더 오래 일한다. 이런 점에서 한 직장에 머무는 근속이 줄고 이직률이 높아지는 건 우연이 아니다.

새로운 삶의 방식에 대한 상상력

모두 얼른 코로나가 종식돼 예전처럼 정상적으로 잘 돌아가기를 바란다. 그러나 정상 상태가 무엇인지에 대해선 근본적 혜안이 필요하다. 코로나 사태는 무분별한 경제활동을 해온 인간에게 자연이 가하는 반격(Backlash)이다. 정말로 ‘포스트-코로나’를 상상한다면, 명품같은 상품에 중독될 일이 아니라 조금 먹고 조금 싸는 새 삶의 방식을 실천해야 한다. 원래 경제란 돈벌이가 아니라 살림살이로,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의 공생이 핵심이다. 소박하게 살더라도 자연과 더불어 이웃과 나누며 보다 건강하게 사는 것, 이것이 범지구적 경제 철학이 돼야 한다. 앞으로 10~20년 사이에 진지한 구조 전환이 없다면 우리 미래는 없다. 이런 긴급 진단은 과학자들의 공통 견해다.

글. 강수돌(고려대학교 융합경영학부 명예교수, 「중독 공화국」 저자)

사진. 셔터스톡, 한국경제 유튜브, 피식대학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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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3
  1. 좋은 내용이네요
    감사합니다.

  2. tae*** 댓글:

    공감이가네요

  3. qkq*** 댓글: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