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당신도 영포티

‘밀레니얼 세대(millennials)’가 주목받고 있다. 1990년대생이 트렌드의 중심이라고 언론이 연일 떠들어댄다. 시대를 불문하고 20대가 주목받지 않던 때가 있던가? 지금으로부터 약 20년을 거슬러 오르면 ‘X세대’라 불리던 이들이 가장 ‘힙(hip)’했다. 바로 지금의 40대가 그들이다. 과거의 X세대는 요즘의 밀레니얼 세대를 바라보면서 힙합 바지를 입고 거리를 활보하던 과거를 떠올린다. ‘나도 옷 좀 입을 줄 알았는데.’ 마음속 푸념이 40대의 봉인된 욕망을 자극하기 시작했다. 좀 더 젊어 보이고, 보다 나은 삶을 즐기고 싶은 40대 ‘아재’들의 반란. ‘영포티’의 등장이다.

‘영포티’가 사실 특별한 게 아니다. 이런 말이 있지 않았나. ‘아버지는 말하셨지 인생을 즐겨라’. 인기 광고 음악 속 아버지는 우리에게 일찌감치 영포티가 될 수 있는 가르침을 선사하셨다. 인생을 즐기려면 할 게 많다. 여행도 가야 하고, 멋진 차도 사야 하고, 즐거운 취미 생활도 가져야 한다. 이게 다 돈이다. 사실 멋진 영포티가 되기 위해선 갖춰야 할 게 많다. 돈이 부족하면 영포티가 되는 걸 포기해야 할까? 아니다. 일단 ‘영포티 스타일’로 옷을 입는 것으로 시작하면 된다. 물론 옷을 사는 것도 돈이 들지만 기회비용이라 생각하자. 약간의 돈을 투자해 감각을 키우면 누구나 영포티가 될 수 있다.

‘아재’에서 ‘영포티’로 변신해야 하는 이유는 멋을 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젊게 살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영포티 스타일이라는 건 뭘까? 그저 유행하는 옷을 입으면 되는 걸까? 아니다.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다. 쉬운 것부터 시도하자. 일단 몸에 맞게 옷을 입는 것부터. 우리나라 40대들은 자신에게 꼭 맞는 사이즈를 잘 모른다. 재킷을 입었는데 품이 너무 넓다면 허리가 탄탄해 보이도록 수선을 맡기자. 바지 밑단이 구두 뒷굽을 덮고 있다면 구두를 살짝 덮을 정도로 길이를 줄여보자. 셔츠를 입어야 하는 사람이라면 맞춤 셔츠를 입어보자. 이 변화들만으로도 옷 맵시가 달라진다. ‘아재’들은 대부분 옷을 크게 입는다. 몸에 맞는 건 불편하다고 느껴서다. 그 고정관념을 고쳐보자. 몸에 딱 맞는 옷을 입으면 훨씬 젊어 보인다.

영원한 청춘의 상징 청바지를 활용하는 방법도 있다. 누구나 청바지 하나쯤은 있지 않나. 다만 지켜야 할 룰이 있다. 역시 적당히 다리에 맞는 슬림한 청바지를 입는 일이다. 그리고 바지 길이도 딱 맞게. 수선이 귀찮다면 밑단을 돌돌 접는 것도 방법이다. 젊은이들이 입는 걸 따라 한다고 어설프게 통 넓은 바지를 입진 마시라. 몸에 딱 맞는 청바지에 새하얀 운동화만 신어도 분위기가 확 달라진다. 새 청바지 사는 데 돈이 많이 드는 것도 아니다. 유니클로, H&M 등 SPA 브랜드 매장에 가면 부담 없이 살 수 있는 청바지가 가득하다.

내 몸에 맞는 사이즈의 옷을 입고 깔끔한 신발만 신어도 영포티 스타일이 완성된다

패션 트렌드를 따라가는 영포티가 되고 싶은가? 그렇다면 한 가지만 기억하시라. ‘과유불급(過猶不及)’. 유행하는 아이템은 몸에 딱 하나만 걸쳐야 적당하다. 요즘의 밀레니얼 세대들에게는 브랜드의 로고가 커다랗게 드러나는 옷이나 ‘어글리 스니커즈(ugly sneakers)’라 불리는 투박하고 못생긴 운동화, 허리에 고무줄이 들어간 ‘스트링 팬츠((string pants)’. 그리고 ‘힙색(hip sack)’이라 불리던 ‘벨트 백(belt bag)’이 대표적인 ‘인싸’ 아이템이다. 콕 집어 추천하자면 40대는 어글리 스니커즈 하나만 신어도 충분하다. 요즘은 어느 브랜드든 어글리 스니커즈 하나씩은 팔고 있다. 깔끔한 폴로 셔츠에 날씬한 청바지를 입고 어글리 스니커즈 하나만 신어도 영포티 스타일에 당당히 합류할 수 있다.

무엇보다 영포티가 갖춰야 할 건 ‘자연스러움’이다. 40대에겐 20대 같은 젊음과 30대만큼의 트렌드 해석 능력이 없다. 그들보다 나은 것이 있다면 조금은 자유롭게 소비할 수 있는 경제력을 갖췄다는 것. 40대에겐 자신에게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스타일을 갖추는 게 중요하다. 그게 제일 멋져 보인다. 물론 그런 스타일을 찾는 게 어렵다. 그래서 시행착오가 필요하다. 가족을 위해 애쓰는 가장의 모습도 멋지지만, 자신의 삶을 적당히 즐길 줄 아는 40대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이번 주말, 가족들과 함께 백화점에 가보자. 지금까지 아내가 사주는 옷만 입었다면 이제는 입고 싶은 옷을 자기가 직접 골라 보시라. 그리고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마주해보라. 영포티가 되는 첫걸음이다.

박정희(패션 스타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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